흔히 어떤 동네에 규제를 걸면 그곳은 식고, 규제를 피한 옆 동네가 부푼다고들 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핵심이 한꺼번에 규제로 묶인 뒤 여덟 달, 집값은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규제를 가장 세게 받은 서울과 분당·광명이 오히려 가장 많이 올랐고, 규제와 상관없던 먼 외곽은 되레 내렸습니다. 규제 여부만으로는 집값의 방향이 설명되지 않는 셈입니다.
규제를 가장 세게 받은 곳이 더 올랐다
2025년 들어 정부는 대출과 거래를 조이는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습니다. 6월, 9월, 그리고 10월. 그때마다 겨눈 곳은 집값이 오르던 서울과 수도권 핵심이었습니다. 상식대로라면 규제를 맞은 그곳이 가장 먼저 식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책 이후 여덟 달간 아파트값을 지역별로 보면, 규제가 가장 촘촘한 서울이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규제가 덜한 경기·전국이 그 뒤를 잇고, 규제가 없는 인천은 거의 제자리였습니다.
규제가 집값을 눌렀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그림입니다. 이 역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보려면, 서울·경기 같은 큰 단위가 아니라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 봐야 합니다.
두 자릿수로 뛴 곳과 뒷걸음친 곳
같은 수도권 안에서도 어디는 크게 오르고 어디는 내렸습니다. 오른 곳에는 규제로 묶인 분당·광명·하남이 있었고, 그 사이에 규제를 피한 구리·용인 기흥도 나란히 섞여 있었습니다. 반대로 내린 곳은 하나같이 규제와 무관한 먼 외곽이었습니다.
순위를 좌우한 건 규제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규제를 맞은 분당도, 규제를 비껴간 구리도 위쪽에 함께 있습니다. 규제를 기준으로는 오른 곳과 내린 곳이 나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규제보다 입지가 집값을 움직였다
규제 여부로 나누면 설명되지 않지만, 서울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기준으로 보면 깔끔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규제를 맞았든 안 맞았든 서울 접근성이 좋은 곳은 올랐고, 규제와 무관하게 서울에서 먼 외곽은 내렸습니다.
규제받은 곳이 오른 칸(분당·광명)과 규제를 피한 곳이 오른 칸(구리·기흥)은 가득 찼는데, 규제받은 곳이 내린 칸은 거의 비어 있습니다. 내린 곳은 규제 밖 외곽에 몰려 있고, 그 원인도 규제가 아니었습니다. 평택은 경기도에서 미분양이 가장 많이 쌓였고, 이천은 서울과의 거리가 멀어 수요가 얇습니다. 규제가 아니라 공급 과잉과 입지가 값을 끌어내린 것입니다.
세 겹 규제가 정상 거래에 건 것
규제가 어떻게 걸렸는지 보면 이 역설이 더 또렷해집니다. 10·15 대책은 서울 25개 구 전역과 경기 12곳을 한 번에 세 겹으로 묶었습니다.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 세 규제가 같은 곳에 겹쳐, 정상적으로 집을 사는 길목마다 규제가 걸렸습니다.
대출은 한도가 절반 가까이 깎이고, 거래는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하며, 산 뒤에는 2년을 직접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값이 오른 건, 규제가 매수 심리까지 없애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몰리며 핵심지가 더 달아올랐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촘촘한 규제에도 예외가 하나 있다는 점입니다.
규제를 비껴가는 취득 경로, 경매
바로 법원 경매입니다. 규제지역이라도 법원 경매로 집을 사면, 정상 매매에 걸리는 지자체 허가·2년 실거주·자금조달계획서가 면제됩니다. 거래 자체가 매매 계약이 아니라 법원이 넘겨주는 취득이라서입니다. 다만 이걸 두고 ‘경매는 규제를 다 피한다’고 보면 틀립니다. 면제되는 건 거래 절차일 뿐, 돈과 세금은 그대로 걸립니다.
낙찰 자금을 대출로 메우면 6억 한도와 상환능력 심사가 정상 매매와 똑같이 적용되고, 6개월 안에 전입해 실거주까지 해야 합니다. 취득세·양도세도 규제지역 중과를 그대로 냅니다. 그러니 경매의 규제 면제는 온전히 현금으로 받을 때에나 살아 있는 이점입니다. 그럼에도 절차 규제가 가볍다는 점 때문에, 정상 매매가 조여진 규제지역에서 경매는 여전히 눈여겨볼 취득 경로로 남습니다.
경매 시장에서도 규제지역은 식지 않았다
이는 경매 결과에서도 확인됩니다. 감정가 대비 얼마에 낙찰됐는지(낙찰가율)를 규제 12곳과 규제 밖 경기로 나눠 보면, 규제지역은 원래도 높았고 규제 뒤에도 60%대 중반에서 70%대로 유지됐습니다. 반대로 규제 밖 경기는 완만히 내려앉았습니다.
규제지역 낙찰가율이 더 높은 건 규제 전부터 그랬습니다. 원래 사려는 사람이 많은 선호 지역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격차 자체를 규제가 만든 것으로 볼 순 없습니다. 다만 정상 매매를 그렇게 조였는데도 경매에서 규제지역 낙찰가율이 높게 유지됐다는 건, 그곳을 향한 수요가 그만큼 두텁게 남아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결국 값을 좌우한 건 서울까지의 거리였다
정리하면, 규제로 집값을 누르려 했지만 가장 세게 누른 곳이 오히려 가장 뜨거웠습니다. 규제는 매수 수요를 없애지 못하고 ‘좋은 입지’로 밀어 넣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규제를 맞은 핵심지도, 규제를 피한 서울 인접지도 올랐고, 정작 식은 건 규제와 무관한 먼 외곽이었습니다. 값의 방향을 정한 건 규제 여부가 아니라 서울까지의 거리였던 셈입니다. 규제가 정상 거래를 조인 자리에서, 그 절차 규제를 비껴가는 경매가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다만 경매도 대출과 세금은 규제를 그대로 받으니, ‘규제를 피하는 지름길’로 여기면 오산입니다. 집값이 어디로 향할지는 규제보다 입지와 공급으로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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