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가 4년 새 2.4배 쏟아졌다, 그런데 왜 5채 중 1채만 팔릴까
법원 경매 물건이 4년 만에 두 배 넘게 불었습니다. 그런데 이 홍수는 집값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무너진 건 ‘전세’였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집들이 경매로 쏟아졌고, 정작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수도권에서도 서울·경기·인천이 서로 다른 홍수를 겪고 있죠. 이 역설을 전국·수도권 데이터로 풀어봤습니다.
쏟아지는 경매 · 4년 새 2.4배가 시장에 나왔다
법원 경매 물건이 빠르게 불고 있습니다. 2021년 9만 7천 건이던 전국 경매가 2025년 23만 4천 건으로, 4년 만에 2.4배가 됐습니다. 특히 2023년을 기점으로 곡선이 가파르게 꺾여 올라갑니다. 물량만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버금가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대목이 있습니다. 물건이 이렇게 쏟아지는데, 정작 팔리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통 시장에 매물이 늘면 값이 조정되며 거래가 붙기 마련인데, 경매장에서는 그 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 팔리는 경매 · 5채 중 1채만 주인을 찾는다
경매에 나온 물건 100채 중 실제로 팔리는 비율을 매각률이라 합니다. 2021년엔 100채 중 36채가 팔렸지만, 2025년엔 22채로 줄었습니다. 나머지는 유찰돼 다음 회차로, 또 그다음 회차로 넘어가며 물건이 쌓입니다.
팔리는 빈도만 준 게 아닙니다. 팔릴 때 받는 값도 낮아졌습니다. 매각가율은 2021년 79.5%에서 2025년 63%로 내려앉았고, 2026년 상반기엔 58.7%까지 떨어졌습니다. 쏟아지는데 안 팔리고, 팔려도 싸게. 시장 밖의 어떤 힘이 물건을 억지로 밀어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힘의 정체는 ‘집값’이 아니었습니다.
원인은 집값이 아니라 전세였다
경매가 늘면 흔히 ‘집값이 떨어져 대출을 못 갚아서’라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이번 홍수의 몸통은 다릅니다. 무너진 건 전세였습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전세가가 꺾이며(역전세), 집주인이 만기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속출했습니다. 빌라 전세가격지수는 2022년 7월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5월까지 내리 빠졌습니다.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를 대신 갚아준 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였습니다. HUG가 전세금을 대신 갚은 대위변제액은 2021년 5천억 원대에서 2023년 3조 5천억 원으로 처음 ‘조 단위’를 넘었고, 2024년엔 4조 원에 육박했습니다. 그리고 HUG는 이 돈을 회수하려 그 집들을 경매에 부칩니다. 대위변제가 폭증한 2023~2024년과 경매 물량이 솟구친 시기가 정확히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세입자 쪽 흔적도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보증금을 지키려 세입자가 신청하는 임차권등기명령은 2021년 7,631건에서 2024년 4만 7천여 건으로 6배 넘게 폭증했습니다(법원 등기정보광장). 요컨대 이 경매 홍수의 상당 부분은 전세 사고가 만든 물량입니다. 진단이 맞는지는, 실제로 쏟아진 집들이 ‘어떤 종류’인지 보면 곧바로 드러납니다.
어떤 집이 쏟아졌나 · 용도가 증언한다
경매를 용도별로 갈라 보면 범인이 분명해집니다. 전세 사고가 집중된 빌라(연립·다세대)와 오피스텔이 폭증의 몸통입니다. 아파트 경매가 4년간 1.2배 느는 동안, 빌라는 2.7배, 오피스텔은 8.8배, 다가구는 3.9배로 불었습니다. 전세를 끼기 쉬운, 서민 주거의 대표 유형들입니다.
팔리는 정도도 딴판입니다. 전세사기가 정점을 찍은 2023년, 빌라와 오피스텔 매각률은 16%대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열 채 중 한두 채만 팔린 셈이죠. 반면 아파트는 같은 해에도 30%대를 지켰습니다. 같은 ‘경매’라는 한 단어 안에, 아파트와 빌라·오피스텔이라는 전혀 다른 두 시장이 들어 있습니다.
왜 빌라·오피스텔은 이토록 안 팔릴까요. 물건이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사려는 사람이 떠안아야 할 것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 전에, 이 물량이 ‘어디에’ 몰렸는지부터 짚겠습니다.
수도권 세 도시, 세 얼굴
같은 경매 홍수라도, 수도권 세 도시가 겪는 모습은 딴판입니다. 물량이 가장 많이 쏟아진 곳은 경기(최근 1년 5.8만 건)이고, 값을 가장 잘 지킨 곳은 서울(매각가율 79.3%), 상처가 가장 깊은 곳은 전세사기 진앙 인천(62.9%로 최저)입니다. 하나의 ‘경매 급증’이 아니라, 세 도시가 서로 다른 이유로 요동칩니다.
가장 극적인 건 서울입니다. 서울 경매도 4년 새 4.8배로 폭증했는데, 그 물량이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빌라왕’ 전세사기가 휩쓴 강서구 한 곳이 서울 전체 물량의 약 4분의 1(8,258건)을 쏟아내는 동안, 도심 용산구는 132건에 그쳤고 매각가율은 93%를 넘겼습니다. 한 도시 안에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있는 셈입니다.
경기는 결이 또 다릅니다. 부천의 빌라 밀집지부터 평택·파주 같은 외곽까지 물량이 여러 위성도시에 넓게 퍼졌고, 미분양·공급 부담이 겹친 평택(52%)·파주(54%)는 매각가율이 절반 수준까지 내려갑니다. 인천은 ‘건축왕’ 물건의 84%가 몰렸던 미추홀구(58.3%)가 진앙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고요. 전세사기 특별법 피해자는 누적 3만 8천여 명(국토부, 2026년 5월)에 이릅니다. ‘수도권 경매’라는 한 덩어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값이 이렇게 빠졌는데도, 왜 선뜻 사는 사람이 없을까요.
싸 보여도 안 쌀 수 있다 · 떠안는 보증금
여기서 이 홍수의 핵심 역설이 드러납니다. 전세 사고 물건은 최저가가 감정가의 절반까지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응찰자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낙찰자가 떠안아야 할 보증금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입자가 대항력을 갖췄다면, 떼인 보증금을 낙찰자가 물어줘야 합니다. 낙찰가를 아무리 깎아도 실질 취득가는 줄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세 사고 물건은 ‘화면에 보이는 가격’과 ‘실제로 드는 돈’이 다릅니다. 이 차이를 읽지 못하면, 싸게 산 줄 알았다가 시세보다 비싸게 떠안게 됩니다. 반대로 대항력이 없어 보증금이 배당으로 정리되는 물건은 표기된 가격이 곧 실질에 가깝습니다. 홍수 속 옥석은 가격표가 아니라 권리에서 갈립니다.
종합 · 홍수를 읽는 법
첫째, 이 경매 홍수는 ‘집값 폭락’이 아니라 ‘전세 붕괴’가 만들었습니다. 역전세와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떼인 집들이 쏟아졌고, 그 대부분은 빌라·오피스텔입니다. HUG가 대신 갚고 회수하려 내놓은 물량이 곡선을 밀어 올렸습니다.
둘째, 물량이 많다고 다 기회는 아닙니다. 쏟아진 물건은 잘 안 팔리는 유형(빌라·오피스텔)과 지역(경기 외곽·인천 진앙)에 몰려 있고, 그중 상당수는 보증금을 떠안아야 하는 집입니다. 같은 수도권에서도 서울 도심은 감정가를 지키는데 경기·인천 외곽은 절반까지 빠집니다. ‘평균 낙찰가율’이라는 한 숫자로는 읽히지 않는 시장이죠.
그래서 눈높이는 처지에 따라 갈립니다. 세입자라면, 싸게 사는 문제보다 내 보증금을 지키는 눈(대항력·확정일자·전세보증보험)이 먼저입니다. 실거주·투자자라면, ‘얼마나 싼가’보다 ‘팔리는가(환금성)·떠안을 게 없는가(권리)’를 먼저 봐야 합니다. 홍수의 계절에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실력입니다.
물론 경매가 정답은 아닙니다. 권리분석·명도처럼 일반 매매엔 없는 장벽이 있고, 특히 전세 사고 물건은 한 번의 오독이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두르기보다 ‘지금 시장이 왜 이런가’를 먼저 이해하고, 충분히 공부하고 신중히 따져보시길 권합니다. 결정과 책임은 늘 본인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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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경매 공개 통계와 공공데이터·언론 보도 기반의 참고용 분석입니다. HUG 대위변제액 등 일부 수치는 보도 인용으로 집계 기준·시점이 우리 통계와 다를 수 있으며, 특정 물건·지역의 매수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대항력·인수 여부는 물건마다 달라 개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 자료 법원경매정보 · 한국부동산원 전세가격지수 · 법원 등기정보광장 · 국토교통부 · HUG 대위변제·경매 관련 보도(세계일보·경향신문·연합뉴스·지지옥션 등)